드라마 × 공간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용산 이촌동, 한강변 일상과 병원의 경계에서(서울을 걷는 드라마 3)

view0920-1 2025. 6. 30. 03:59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만들어낸 병원 밖의 풍경들

2020년부터 두 시즌에 걸쳐 방영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응급 상황이나 판결 중심의 자극적 전개 대신,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일하고, 웃고,

친구들과 밥 먹고 밴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극 중 주요 배경은 ‘율제병원’이지만,
실제로 율제병원의 외관은 서울아산병원을 모티브로 한 세트장이었고,
주인공들이 쉬거나 식사하는 장면, 병원을 벗어난 풍경은
대부분 용산구 이촌동과 한강변 인근에서 촬영되었다.

용산구 이촌동은 서울 안에서도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와 정갈한 주거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동부이촌동 지역은 고급 아파트 단지와 한강공원이 가까이 있고,
전체적으로 거리폭이 넓고 조경이 잘 돼 있어
드라마 속 인물들이 퇴근 후 감정을 정리하며 걷기 좋은 동네로 기능한다.

정원에 꽃이 피어 있고, 카페 간판은 작고 차분하며,
도로에는 차보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리.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런 이촌동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바쁘고 지친 하루 사이, 한 호흡 멈추는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여운처럼 남았다.

 

 

실제 촬영지, 이촌동 골목과 한강변의 현재 풍경

드라마 팬이라면 한 번쯤 찾아보고 싶었던 장소들,
그 중 하나가 이준완(정경호 분)이 정원과 함께 걷던 한강 이촌지구 산책길이다.
서울 한강대교 북단과 이촌역 사이에 위치한 이촌한강공원은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는 공간으로 자주 등장했다.
강을 바라보며 걷는 장면,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장면들이
실제로 이촌나들목 주변 산책로에서 촬영되었고,
지금도 그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 하나의 핵심 공간은 이촌역 4번 출구 뒤편의 주택가 골목이다.
주인공들의 사적인 공간,
예를 들어 김준완이 편지를 받고 혼자 걷던 밤길이나,
정원이 형제와 함께 걸었던 조용한 골목이 이곳이다.
주차된 차량과 고요한 담벼락, 나지막한 가로등 불빛이
그 장면의 감정선을 더욱 조용하게 만들어줬다.

이촌동의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풍경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개발이 많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 덕분에 드라마 속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고 싶은 팬들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동네로 남아 있다.

산책길에서 멀지 않은 곳엔
실제로 드라마처럼 낡고 오래된 양식당,
조용한 서점, 무채색 인테리어의 디저트 카페들이 군데군데 있다.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며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긴 꼭 그 장면 같네’ 싶은 순간이 툭툭 터진다.

 

 

한강이 흐르고 감정이 멈추는 곳, 이촌에서 경험하는 잔잔한 하루

이촌동과 한강공원은 서울에 있으면서도
서울스럽지 않은 하루를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이 얼굴에 닿고,
수풀 사이로 자전거가 스쳐 지나가고,
어느 벤치에는 누군가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감정은 바로 이런 장면 속에 담겨 있었다.
누구도 크게 울지 않고, 누구도 떠들지 않지만,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회복하는 시간.

이촌한강공원은 격렬한 관광지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거나
물가 근처에 누워 구름을 보는 일이 일상처럼 흘러간다.
그 풍경 속에서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마치 내가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그저 이 거리를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촌동이 아름다운 이유는,
화려하지 않지만 섬세하기 때문이다.
담장의 타일이 오래돼 있어도 정돈돼 있고,
카페의 간판이 작아도 정확하게 보인다.
드라마도 그랬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마음을 흔들었던,
그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이 동네에 머물러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주인공이 생각나는 한강공원

이촌의 강변을 걷다, 그날의 마음처럼 조용히

이곳에 가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장면을 시작할 수 있다.

이촌역 4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면,
서울 한복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한 길이 펼쳐진다.
회색빛 담장과 단정한 아파트단지 사이로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누군가가 천천히 걷고 있을 것 같은 거리.
드라마 속 김준완이 이어폰을 꽂고 천천히 걸으며 듣던
izi의 '응급실'이 강변 바람 소리와 함께 뒤섞이면,
말없이 걷는 그 장면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재생된다.

작은 교차로 끝에 이촌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나들목을 
내려가면 한강과 하늘, 두 가지 색만 남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물가에는 커다란 나무 벤치가 하나 있고,
누군가는 혼자 앉아 책을 읽거나,
멀리 지나가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촌한강공원 산책로는 말이 필요 없는 길이다.
걷다 보면 마음이 조용해지고, 서서히 감정이 가라앉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등장인물들이 격렬한 하루를 보낸 뒤
이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그 길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산책이 끝나갈 즈음,
강 너머로 해가 기울고,
마치 OST 한 곡이 흐르듯
어느 감정이 천천히 가슴을 채운다.
그제야 알게 된다.
이촌동은 단지 조용한 동네가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