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드라마는 공간으로 말한다] ④<펜트하우스> – 높이 올라갈수록 무너지는 인간성의 구조

view0920-1 2025. 7. 1. 23:30

공간은 계급을 숨기지 않는다

'단순한 막장드라마다'와 '숨겨진 계급 서사와 인간 심리의 구조를 섬세하게 설계한 작품이다'라는 극과 극 평가를 받고 있는 드라마<펜트하우스>. 이 드라마가 자극적인 막장을 넘어 숨겨진 계급 서사와 인간 심리의 구조를 섬세하게 설계한 작품이라고 평을 받는 이유는  바로 공간의 수직적 구조이다. ‘헤라팰리스’라는 100층 초고층 아파트는 단지 고급 주거 공간이 아니라, 명확한 계급 피라미드의 상징물로 설정되어 있다. 드라마는 공간의 물리적 높이와 인물의 사회적 지위, 심리 상태를 치밀하게 일치시키며 시청자에게 시각적으로 계급 갈등과 욕망의 밀도를 전달한다.
드라마의 첫 장면부터 시청자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죽음’을 목격한다. 이는 단지 쇼킹한 장면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폭력성과 권력의 위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펜트하우스>에서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권력의 지도다. 그 복잡한 공간 속에 감춰진 상징성과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왜 이 드라마가 공간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헤라팰리스 – 부의 높이, 인간성의 추락

헤라팰리스는 단순한 고급 아파트 단지가 아니다. 그곳은 100층에 가까운 수직적 구조로 상징적으로 ‘절대적인 위계 질서’를 품고 있다. 1층에는 관리인과 입주민이 아닌 이들이 출입하며, 중간층에는 중산층 혹은 중간 권력자들이 거주하고, 꼭대기에는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이 산다. 그런데 그 ‘성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의롭고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것이 아님을 시청자는 곧 알게 된다.
천서진, 주단태, 심수련 등 주요 인물들의 집은 각각 꼭대기 층에 위치한다. 이들의 집은 대리석으로 도배되어 있고, 높디높은 천장과 커다란 창문은 외형적 ‘완벽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불안정한 결혼, 이기적인 욕망, 억눌린 감정, 불륜, 학대 등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 가득 차 있다. 이처럼 공간은 ‘성공의 높이’와 ‘도덕의 바닥’이 교차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시청자는 각 인물의 집 구조와 인테리어, 색감 등을 통해 그들의 감정과 성향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천서진의 집은 화려한 클래식풍이지만 어딘지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주단태의 공간은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고독하고 공허하다. 그 모든 공간은 감정을 억누르는 구조이자, 무너질 듯한 긴장감을 시각화한 형태를 갖고 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 오르내림이 만든 관계의 비극

드라마 속에서 엘리베이터와 계단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 공간 안에서는 모든 인물의 감정이 교차하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감춰진 폭력이 드러난다. 특히 엘리베이터는 폐쇄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긴장감 있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좁은 공간 안에서 마주한 두 인물은 위계적으로 누구 위에 있고, 누구 아래에 있는지를 은연중에 인식하게 된다.
계단은 보다 극적인 장치로 활용된다. 누군가를 밀치는 장면, 누군가가 뛰어내리는 장면, 혹은 절망에 찬 채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장면은 공간이 감정과 서사를 끌어내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특히 헤라팰리스의 나선형 계단은 그 자체로 복잡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데, 올라갈수록 외로운 구조, 내려갈수록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한다.
<펜트하우스>에서는 오르내림이 단지 위치 이동이 아닌 사회적 위치와 인간의 욕망이 오가는 구조로 기능한다. 이 장치는 극적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이 드라마는 계단 위에서 굴러떨어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각인시킨다. 결국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인물의 상승과 몰락, 충돌과 협상의 무대가 된다.

 

&lt;펜트하우스&gt;극적인 장치로 활용된 계단

<펜트하우스>의 공간은 결국 무너질 욕망의 성채다

<펜트하우스>의 공간은 처음부터 안정된 구조가 아니다. 겉보기에 완벽하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내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균열로 가득하다. 이는 단지 인테리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상징하는 권력과 인간관계의 기반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헤라팰리스는 점점 붕괴되기 시작한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말이다. 인물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가족을 속이며, 아이들을 수단화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쌓아 올린 공간은 그들의 욕망과 함께 무너진다. 특히 드라마의 엔딩에서 헤라팰리스가 철거되고 사라지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들은 욕망을 위해 쌓은 공간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결국 공간과 함께 몰락한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공간은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고. 그리고 그 공간이 부패하고 뒤틀릴수록, 인간성도 함께 무너진다고. <펜트하우스>는 단순한 ‘강남 상류층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쌓아 올린 공간 안에서 어떻게 욕망이 설계되고, 결국 파괴로 귀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건축적 인간 드라마다. 공간은 무너졌지만, 그 안에 깃든 탐욕과 허위, 그리고 인간성의 붕괴는 시청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