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공간으로 말한다] ⑫<아는 와이프> – 집안 인테리어 변화로 본 시간의 흐름
집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기억한다
2018년 tvN에서 방영된 <아는 와이프>는 한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며 벌어지는 ‘시간 리셋 판타지’다. 주인공 차주혁이 선택을 바꾸자, 아내가 바뀌고 삶의 조건도 바뀌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단순히 사람이 바뀌는 것보다 더 섬세하게 관찰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집’이라는 공간의 변화다.
주혁이 과거를 바꾸기 전과 후의 집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단순히 가구만 바뀐 것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 색감, 빛의 흐름까지 인물의 심리와 삶의 방향을 정직하게 반영한다. 이 드라마는 말보다 공간으로 감정을 말하는 작품이다. 집은 등장인물의 관계 온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분위기 또한 차갑고 따뜻하게 바뀐다. 시청자는 집 구조만 봐도 지금의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감지하게 된다.
과거의 집 – 좁고 무채색, 관계의 단절을 말하다
회귀 전, 즉 주혁이 혜원을 아내로 두고 사는 집은 좁고 답답한 구조다.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벽지와 가구는 회색과 베이지 톤 위주로 단조롭다. 공간 전체에서 ‘피로’가 느껴진다. 조명은 어둡고, 식탁은 작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 앉아 밥을 먹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부부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특히 침실의 구조가 중요하다. 침대는 넓지만 가운데 공간이 비어 있고, 커튼은 햇빛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집 안 어디에도 편안함이 없다. 생활은 유지되지만, 감정은 흐르지 않는 구조다. 이 인테리어는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는 현실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집은 ‘더 이상 돌보지 않는 감정’의 메타포다.
회귀 후 집 – 공간도 호흡을 되찾다
주혁이 시간을 바꾼 후 새로운 삶에서 등장하는 집은 구조적으로 넓어졌을 뿐 아니라, 색감과 조명, 가구 배치까지 모두 따뜻하게 달라진다. 전처인 혜원이 아닌, 새로운 아내 우진과 사는 집은 ‘감정이 흐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개방된 주방과 거실, 밝은 조명, 원목 가구와 식물들이 있는 인테리어는 정서적인 여유와 관계의 부드러움을 상징한다.
특히 다이닝 테이블이 크고 중심에 배치되어 있으며, 식사 장면에서도 두 사람이 자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침실 역시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구조로, 생활의 리듬이 감정과 함께 순환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집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회피’에서 ‘연결’로 이동했다는 것을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다.
공간이 말하는 정서의 온도, 감정의 되돌림
드라마가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주혁은 현재의 삶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선택을 바꾸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혜원을 마주할 때, 공간은 또 한 번 바뀐다. 과거의 낡은 구조를 그대로 두지 않고, 작지만 따뜻한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과거와 현재의 집이 ‘구조는 유사하지만 감정은 달라진’ 형태로 연출되면서, 시청자는 공간이 실제로 감정을 바꿀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혜원과 주혁이 함께 있는 집은 처음과 같은 면적이지만, 색감과 조명,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감이 다르다. 과거엔 같은 공간 안에서 부딪혔다면, 이제는 같은 공간 안에서 기다려주고, 바라봐준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감정이 달라졌고, 감정이 달라지니 공간도 새롭게 보인다. 결국 집이란 물리적 장소를 넘어 ‘관계의 기록지’라는 사실을 드라마는 조용히 말해준다.
결국, 집은 가장 솔직한 감정의 풍경이다
<아는 와이프>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고, 선택에 따라 재편되며,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인다. 드라마는 공간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한다. 인물이 성장하고 후회하며, 감정을 회복하고 사랑을 다시 말할 때, 그 중심엔 늘 집이 있다.
결국 집은 단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닿고 있는지, 삶이 지치고 있는지, 혹은 다시 살아나고 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장소다. <아는 와이프>는 시간 판타지를 통해 보여주는 ‘선택의 무게’를 이야기하지만, 그 무게는 결국 공간이라는 감정의 무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집은 기억의 창고이자, 관계의 온도를 반영하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