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공간으로 말한다] ⑮<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로펌 '한바다', 세상과의 첫 인사
한바다는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구조화된 심리의 무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신입 변호사로, 로펌 ‘한바다’에 입사하며 사회와의 첫 본격적인 접촉을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녀가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 속에서 감정과 관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다.
한바다의 내부 공간은 단순히 근무 공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영우가 감각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과, 조직이라는 사회 구조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사무실의 구조, 책상의 배치, 회의실의 분위기, 복도의 이동 동선, 엘리베이터의 구조까지 모두가 하나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공간 배치’ 그 자체로 인물의 정서적 흐름을 설계하며, 시청자가 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로펌 복도 – 일직선 구조가 만든 심리적 긴장과 이동
한바다 로펌의 복도는 대부분 길고 직선적인 구조로 설계돼 있는데 이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에게는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긴장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익숙한 루틴 안에선 안정되지만,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치거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도망칠 곳 없는 긴 복도는 심리적 압박감을 증폭시킨다.
우영우는 종종 복도를 걷다 말고 멈추고, 문 너머를 엿보거나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문고리를 잡고 머뭇거린다. 복도의 일직선 구조는 시선을 가두고, 공간 내의 ‘개인성과 사회성의 충돌’을 상징한다. 특히 상사인 정명석과 마주치는 복도 장면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심리적 전환의 경계선처럼 기능한다. 이처럼 단순한 복도가 감정적 스위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점은 공간의 상징성을 강화한다.
회의실 – 유리 벽과 네모 책상이 말해주는 투명함과 배제
회의실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투명한 공간인 외형상 ‘열린 조직’,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상징하는 구조지만, 우영우에게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회의실의 책상은 항상 네모나고 직각이다. 참여자들이 동등하게 앉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심에 위치한 인물의 발언이 우선되고, 우영우는 항상 가장 구석에 앉는다. 이 배치는 물리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사회적 거리감을 은근히 표현하는 방식이다.
또한 유리 벽은 소리를 막지 않지만, 시선을 통제한다. 외부 직원들이 안을 들여다보고, 우영우는 그 시선을 의식하며 긴장을 느낀다. 따라서 이 회의실은 물리적 투명함 속에 감정적 고립을 만든 공간이다. 정명석이 가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장면 역시, 이 공간이 얼마나 닫혀 있으면서도 ‘노출된 감정의 무대’인지를 보여준다.
개인 책상 배치 – 질서, 예외, 그리고 인정의 흐름
사무실의 책상 배치는 한바다의 조직문화와 우영우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일렬로 정돈된 책상에 앉는 구조지만, 우영우의 책상은 약간 비껴난 구석에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소수자를 위한 배려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구조적 예외의 시각화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특성상 소음과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구석이 더 편하지만, 이 배치는 동시에 ‘조직과의 간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책상 주변에 동료들이 더 자주 찾아오고, 우영우의 종이 고래나 책이 자리를 벗어나기도 하면서, 책상이 점점 조직 안의 일부로 흡수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그녀가 퇴근할 때마다 책상 위를 정리하는 습관과, 마지막까지 등을 돌리지 않고 인사하는 모습은, 이 책상이 단지 일하는 공간이 아닌 사회와의 접점이자 자아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엘리베이터와 출입구 – 사회의 문턱, 반복과 용기의 공간
한바다의 엘리베이터는 드라마에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심리적 문턱을 넘는 상징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우영우가 처음 한바다에 출근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이 열리는 순간, 시청자는 그녀가 ‘사회라는 큰 건물 안에 발을 딛는 긴장’을 함께 느낀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좁고, 타인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우영우가 시선을 아래로 두거나, 고래 이야기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장면은, 이 공간이 심리적 불안을 압축하는 통로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엘리베이터는 점차 변화의 공간이 된다.
동료들과 함께 타고 웃기도 하고, 출입구 앞에서 고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기도 하면서, 이 공간은 소외에서 연결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이동한다. 결국 한바다의 공간 구조는 우영우라는 개인이 사회라는 낯선 시스템에 진입하고, 자신의 리듬대로 녹아드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