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눈물의 여왕〉 – Ep.01 퀸즈 저택, 화려함 속 감정이 사라진 시대

view0920-1 2025. 7. 8. 21:55

<눈물의 여왕> 속 집은 모든 걸 가졌지만, 말할 수 없었다

2024년 상반기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눈물의 여왕>은 단순한 재벌가 로맨스의 틀을 벗어나 가족, 자본, 사랑, 고립이라는 테마를 공간 안에서 풀어낸 드라마다.
주인공 홍해인은 재벌 3세이자 그룹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으나,
그녀가 사는 퀸즈 저택은 감정의 교류가 단절된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곳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가진 집”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감정을 꺼내지 못하는 시대의 표본이다.
말보다 체면, 위로보다 거리, 사랑보다 통제가 먼저인 이 집은
지금의 한국 사회 특히 상류층, 엘리트 가족, 고립된 성공 모델의 단면을 공간 구조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lt;눈물의 여왕&gt;의 퀸즈 저택

퀸즈 저택, 감정이 침묵하는 건축 구조

홍해인가족이 사는 집은 시각적으로는 ‘완벽함’에 가까운 공간이다.
대리석 복도, 중심을 뚫고 올라가는 계단, 계층을 상징하는 샹들리에,
그리고 외부 시선까지 차단하는 대형 창문들.
그러나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마주치지 않는 구조,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감,
불필요한 대화가 생기지 않도록 짜여진 동선들이 이 집을 감정의 무풍지대로 만든다.

이 집의 식탁은 대화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침묵을 위한 거리두기의 상징이다.
거실은 넓지만, 늘 조용하고 비어 있고,
침실은 고급스럽지만 온기를 느낄 수 없다.
결국 이 공간은 ‘사랑받는 공간’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공간’, ‘기능적 체면 공간’으로 기능하며,
정서적 관계보다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시대의 욕망을 보여준다.

 

 

집이 넓어질수록 관계는 좁아진다

흥미로운 건, 이 저택이 단지 ‘재벌가’이기 때문에 이렇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중산층 이상 가족들 역시,
더 넓고 좋은 집을 원하지만, 그 넓은 공간은 정서적 고립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는 점점 커지고, 방은 많아지지만, 대화는 줄고,
각자의 방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살아가는 삶이 ‘새로운 보통’이 되고 있다.

<눈물의 여왕>의 퀸즈 저택은 그런 삶의 극단이다.
모두가 같은 집에 있지만, 누구도 서로의 마음을 묻지 않는다.
이 공간은 ‘함께 있으나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간이 곧 정서를 지운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침묵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교환할 방법이 사라진 시대의 결과임을 이 드라마는 공간으로 증명한다.

 

 

감정을 밀어낸 공간이 남긴 것

드라마 후반부, 홍해인부부는 결국 서로에게 감정을 꺼내게 된다.
하지만 그 계기는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공간에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홍해인이 병으로 쓰러지고, 집 안의 권력 구도가 흔들리며
완벽하게 짜여졌던 퀸즈 저택의 질서에도 균열이 생긴다.
그 틈에서야 감정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고립에서의 반작용과 닮았다.
팬데믹, 계급 단절, 상호 감정 피로…
그 모든 시대적 침묵이 무너질 때,
공간도 더 이상 구조로 기능하지 못하고, 감정의 무대를 허용하기 시작한다.
즉, 이 집은 애초에 잘못 설계된 게 아니다.
그 안에서 감정이 필요 없는 삶을 원했던 시대가, 이 집을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공간에 살고 있는가

<눈물의 여왕>은 고급스러움을 해체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고급스러움 속 무감각한 일상의 구조를 해부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직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조용히 살아가는 공간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조용함 속에서 무너지는 가족, 차가운 부부, 단절된 감정을 본다.
공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시대는 그 침묵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려할수록 외롭고, 넓을수록 멀어지는 지금.
당신의 집은, 연결을 허락하고 있는가? 아니면, 침묵을 명령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