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마당이 있는 집〉 – Ep.03 그 마당은 왜 자꾸 불안을 심었을까

view0920-1 2025. 7. 10. 21:46

이상적인 공간의 낯선 그림자

2023년 Genie TV에서 방영된 <마당이 있는 집>은 우리가 늘 꿈꿔왔던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넓은 거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 계절마다 다른 빛을 품는 마당 — 이 집은 ‘성공한 삶’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완벽한 집에서 주인공은 점점 낯선 기운을 느끼고, 그 낯섦은 곧 불안이 되고, 폭력이 되고, 의심이 된다.

왜 마당 있는 집이어야 했을까?
<마당이 있는 집>은 제목부터 그 공간을 말하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집’이 아니라 집 안에 스며든 감정의 균열이다. 그리고 그 균열은 마당이라는 이상적인 공간에 투사된 시대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lt;마당이 있는 집&gt;의 마당

마당은 자유로운가, 통제받는가

마당은 원래 자연과 가장 가깝게 닿는 공간이다. 도시 아파트의 베란다나, 빌라의 공용 마당과는 다른, 전유(專有)의 공간.
그곳에 나만의 화분을 놓고 의자를 두고 고양이를 풀어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진짜 집’이라 부른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에서 마당은 정서적으로 통제된 공간이다. 마당이 보이는 위치에 주방과 거실이 있고 모든 방의 창은 마당을 향해 열려 있으며 실제로 가족 구성원들은 늘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당하는 듯한 동선에 갇혀 있다.

마당은 열려 있지만, 그 안의 공기는 답답하다. 자연을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투명한 감옥이 된다.

 

 

주방과 마당 사이, 아내의 위치는 어디인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바로 주방이다. 주방은 마당과 연결돼 있고 아이와 남편, 손님까지 모두 이곳을 통과하며 아내이자 주인공인 ‘주란’의 감정은 이 복잡한 경로 안에서 점점 얇아진다. <마당이 있는 집>은 주방을 가정의 중심이 아니라 감정의 무덤처럼 연출한다. 밝고 깔끔한 싱크대, 절제된 인테리어, 높은 수납장 — 하지만 그 구조는 감정의 흐름을 막는다. 말은 오가지 않고 식사는 조용하며, 표면만 정리된 관계들이 이 주방에 쌓인다. 그 모든 시선은 마당을 향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감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상적으로 보이는 집’이라는 연극 무대의 배경을 확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완벽한 집은 왜 불안을 숨기기 딱 좋을까

드라마 속 범죄는 느닷없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이 감정을 오래도록 숨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이 있는 집>은 말한다. 모든 게 잘 정돈된 구조 안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아무도 모른다. 이 집의 공간은 너무 넓고, 너무 단정하다. 이러한 모습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감정이 머무를 구석이 없고 무언가를 억지로 포장해두기에 딱 알맞은 곳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일수록 이 집에서는 오래도록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은 작게 시작한다. 마당의 냄새, 낯선 흔적, 의미 없는 반복들 — 그리고 그것은 이 집을 이상적으로 만든 구조 안에서만 더 조용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우리가 꿈꿔온 집은 정말 안전한가

<마당이 있는 집>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직설적이다. “좋은 집”이라고 불리는 조건들을 하나씩 나열한 뒤, 그 조건 속에 무엇이 배제됐는지를 묻는다.
감정의 흐름은 설계되지 않았는가?
의심의 통로는 막아두었는가?
안전은 보장되었는가?

우리는 마당 있는 집을 ‘성공’이나 ‘가족의 완성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도 그 안에서 숨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미완의 함정이다. 완벽한 집일수록 그 안에 결핍이 더 오랫동안 숨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설계해야 할 건 공간보다 감정의 흐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