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Love> – 삿포로의 눈밭 위를 걷던 기억, 우타다 히카루의 멜로디가 흐를 때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을 따라 흐른 첫사랑의 궤적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First Love(ファーストラブ 初恋)’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시간의 레이어 속에서 교차하는 감정의 선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품은 한때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진 남녀,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그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사랑이란 이름 아래 지나간 감정을 다시 돌아보는 이 서사는 우타다 히카루의 전설적인 곡 ‘First Love(1999)’와 ‘初恋(2018)’이라는 두 개의 노래를 모티프로 탄생했다. 청춘과 현실, 환상과 고통이 교차하는 이 이야기는 음악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으며, 마치 한 곡의 서정시처럼 전개된다. 유키(미츠시마 히카리)와 하루미치(사토 타케루)는 청춘 시절 가장 뜨거운 감정을 나눴지만, 어른이 되어 서로를 놓쳤고, 다시금 그 감정을 되찾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드라마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눈빛과 침묵, 그리고 장면마다 흐르는 음악과 공간을 통해 그 모든 감정을 대사 이상으로 보여준다. 특히 삿포로의 거리와 설경은 첫사랑의 찬란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그것이 이 드라마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삿포로 – 눈 속에 덮인 기억의 공간
‘First Love’의 주된 배경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다. 이 공간은 단순한 도시적 배경이 아니라, 기억이 눈처럼 쌓이는 장소로 설정되어 있다. 유키와 하루미치가 처음 만나고, 춤추고, 키스하고, 결국 멀어졌던 그 모든 순간들이 삿포로의 거리, 하늘, 눈밭, 기차역 같은 공간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장소는 유키가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지나치는 익숙한 거리들, 그리고 둘이 나란히 걸었던 설원 위 풍경이다. 도시의 일상성과 눈 덮인 풍경의 낭만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현실과 기억이 겹치는 시공간으로 작동한다. 두 사람의 현재는 늘 바쁘고 고단하지만, 그 속에서도 과거의 기억은 풍경 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적 연출은 감정을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장치가 되며, 시청자는 인물들의 눈빛이나 대사보다도 공간을 통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삿포로는 다른 도시보다도 계절감이 뚜렷하고 감각적이기 때문에, 감정을 공간으로 시각화하는 데 더없이 적합한 무대다. 특히 설경과 어두운 야경의 대비, 따뜻한 실내 조명과 외부의 차가운 눈빛이 인물들의 내면과 정서에 일치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한 편의 감성 영화 같은 드라마로 완성된다. 이처럼 ‘First Love’는 공간 그 자체가 기억의 보관소이자, 감정의 전달자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견인한다.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 – 가사가 아니라 멜로디가 기억을 이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당연히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이 주는 힘이다. ‘First Love’와 ‘初恋’은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드라마의 정서를 구성하는 중심 기둥 역할을 한다. ‘First Love’는 1999년에 발표된 이후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첫사랑과 청춘을 상징하는 노래로 기억된다. 반면 ‘初恋’은 성숙한 감정,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어 드라마에서 현재의 시점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쓰인다. 이 두 곡은 각각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상징하며, 장면 전환 시 교차로 삽입되면서 감정의 변화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들이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인물들이 직접 음악을 들으며 반응하고, 기억이 멜로디를 통해 재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촉매제이자, 인물의 행동과 기억을 자극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피아노 인트로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강한 감정 연결성을 가진 이 노래는, 단순한 OST를 넘어 드라마 전체를 감싸는 감정의 결이다. ‘First Love’라는 타이틀이 음악의 제목이자 드라마의 제목인 이유는 분명하다. 음악이 곧 기억이고, 사랑이며,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 동력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 음악과 공간이 이끄는 감정의 재생
‘First Love’는 끝난 사랑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멈췄던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단절된 시간이 다시 연결되고, 잊었다고 믿었던 감정이 음악과 공간을 통해 되살아나는 과정은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닌 감정의 재생이다. 유키와 하루미치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마음속 한 부분에는 여전히 서로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누군가를 다시 만나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직면하면서 다시 정리되고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는 그런 과정을 결코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차분하게, 때로는 무표정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 침묵의 사이사이에 있는 공간의 디테일과 음악의 멜로디는 감정을 뚜렷하게 전달한다. 삿포로의 하늘, 기차역, 흰 눈길,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미묘한 미소 하나까지 — 이 모든 것이 시청자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First Love’는 그렇게 보편적인 기억을 각자의 방식으로 일깨우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이 작품을 다룬 이유는 명확하다. 공간과 음악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시간 여행, 그리고 그 여행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마음의 결을 다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아 있고, 음악이 흐르는 순간 그 감정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