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브리저튼> – 무도회장의 현란함과 스트링 팝, 감정은 클래식처럼 번져간다

view0920-1 2025. 8. 6. 16:04

고전 시대극의 외피를 입은 감정의 폭풍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은 단순한 고전 시대극의 향수를 넘어, 시각과 청각 모두를 휘감는 감정의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19세기 영국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는, 브리저튼 가문의 형제자매들이 사회적 관습 속에서 사랑과 결혼, 계급,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겉보기에는 고전적인 왕실풍 로맨스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성적 주체성, 감정의 해방, 결혼 제도의 무게 같은 주제가 촘촘히 깔려 있다. 그 감정선은 굳이 대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이 작품의 감정은 화려한 무도회장, 단정한 응접실, 섬세하게 꾸며진 정원 같은 공간들, 그리고 그곳에서 흐르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음악을 통해 더 강하게 전달된다. 예를 들어, 한눈에 반한 상대와 첫 춤을 추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대화가 아니라 눈빛과 움직임, 음악의 템포에 집중한다. 브리저튼은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만큼 시청자는 더 깊이 빠져든다. 시대극이라는 형식 안에 현대적 감정의 리듬이 교묘하게 숨어 있는 이 작품은, 고전미와 동시대적 감성의 가장 세련된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브리저튼' 무도회장의 현란함과 스트링 팝, 감정은 클래식처럼 번져간다

무도회장의 중심, 감정이 교차하는 공간 연출

브리저튼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단연 무도회장(Ballroom)이다. 시즌마다 수차례 열리는 이 화려한 사교무대는 단순한 사교장이 아닌, 감정이 충돌하고 사랑이 움트며 권력과 계급이 눈빛으로 거래되는 상징적 공간이다. 무도회장은 계절감에 따라 테마가 달라지고, 조명과 천장 장식, 드레스의 색감까지 정교하게 연출되어 매 장면이 하나의 회화처럼 느껴진다. 이 공간은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연인이 된 두 사람이 나란히 춤을 출 때는 카메라는 그들의 동선을 따라 유려하게 흐르지만, 관계가 어긋날 때는 시선이 분리되고 군중 속에서 고립되는 구조를 택한다. 뿐만 아니라, 침실, 도서관, 복도, 마차 안과 같은 실내공간들도 감정의 진폭을 조율하는 정밀한 장치로 작동한다. 사랑을 숨기는 장면에서는 벽과 커튼이 감정을 가리고, 고백의 순간에는 열린 창이나 넓은 정원이 배경이 된다. 이처럼 브리저튼은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 자체의 일부로서 촘촘하게 활용한다. 고전적 미장센 속에 심리적 밀도를 설계하는 방식은 시청자에게 무의식적인 감정이입을 유도하며, 공간이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드라마로 완성된다.

 

 

현대 팝을 스트링으로 바꾼 음악의 혁신

브리저튼에서 가장 큰 반전을 주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시청자가 무도회장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며 순간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하고 느끼는 순간, 이 드라마는 이미 그 사람의 감정에 진입해 있는 것이다. 브리저튼은 현대 팝 음악(아리아나 그란데, 테일러 스위프트, 션 멘데스 등)을 클래식 스트링 편곡으로 재해석해 무도회에서 연주한다. 처음엔 전통적인 고전 음악처럼 들리지만,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현대의 사랑 노래임을 인지하게 되고 감정의 시대적 경계를 허물며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이 방식은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오히려 브리저튼의 핵심 전략이다. 고전적인 공간과 복식 속에 숨은 현대적 감정을 시청자가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 브리저튼의 사운드트랙은 매 시즌 음악 자체로도 화제가 된다. 특히 시즌1에서 스트링 버전으로 편곡된 ‘thank u, next’나, 시즌2의 ‘Material Girl’, 시즌3의 ‘Snow on the Beach’는 장면 속 인물들의 감정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음악이 이야기의 한 축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에서 음악은 배경음이 아니라 감정의 해석자이며, 장면과 장면을 감성적으로 이어주는 감정의 끈이다.

 

 

감정의 시대를 건너는 장면들, 브리저튼이 보여준 로맨스의 미학

브리저튼이 독보적인 로맨스 드라마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무대나 잘생긴 배우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감정의 본질을 시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특별하다. 누군가를 처음 보고 가슴이 뛰는 장면, 그와 춤을 추며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이 떠나가는 마차 안에서 터져 나오는 장면 속 이런 순간들은 모두 고전시대의 룰에 갇혀 있지만 현대인의 감정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잘 디자인된 공간과 정확하게 배치된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 사랑을 하며 흔들리는 사람의 내면을 가장 정교하게 묘사하는 방법은 결국 공간과 음악이라는 것을 브리저튼은 정확히 알고 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변화하는 인물들의 관계와 성장도 이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브리저튼을 본다는 건, 결국 클래식한 미장센 속에 숨은 나 자신의 사랑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