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트랙 #1> – 겨울의 하숙집, 창밖의 눈빛, 그리고 멜로디가 감정을 들려줄 때
멀어지지 않기 위해 가까워진 시간의 밀도
영화 '그남자 작곡 그여자 작사'가 떠오르는 넷플릭스 드라마 ‘사운드트랙 #1’은 사계절 중 가장 감정이 잘 들리는 계절,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짧지만 밀도 있는 서사다. 서로를 오래 알고 지낸 두 남녀가 한 공간에서 머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랑에 눈떠가는 이 이야기에는 흔한 고백이나 사건이 없다. 대신 감정은 침묵 속에서 차오르고, 작은 대사 한 줄, 시선 한 번, 그리고 음악 한 구절로 그 마음이 전달된다. 특히 주인공 선우(박형식)와 은수(한소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공유해온 사이지만, 그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게 감정을 억누르고 유지되어 왔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경계의 순간들을 음악 작업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 녹여내며 보여준다. 은수는 작사가로, 선우는 사진작가로 설정되었지만, 직업 그 자체보다는 감정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런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에서 며칠간 함께 머물게 되며, 그동안 숨겨온 마음이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두 사람을 담을 때, 인물보다 공간을 먼저 보여주는 장면이 많다. 빈 방, 쌓여 있는 책, 익숙한 주방,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기타 소리. 그 모든 것이 대사보다 더 많은 감정을 말해주는 순간들이다. 사랑은 말보다 감정의 온도로 다가온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아주 조용히 말하고 있다.
오래된 하숙집, 감정을 틔워낸 겨울의 공간
‘사운드트랙 #1’의 핵심 배경은 오래된 2층 양옥 하숙집이다. 그곳은 특별할 것 없는 오래된 서울 주택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모든 감정이 응축되는 유일한 무대로 기능한다. 은수가 혼자 살던 이 집에 선우가 잠시 머물게 되면서, 그 공간은 더 이상 익숙함만으로 유지되는 장소가 아니라 감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밀실로 변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겨울 햇살, 벽에 걸린 오래된 포스터, 싱크대 옆의 컵 하나까지 모두 장면 속 감정의 보조자처럼 작용한다. 특히 이 공간은 폐쇄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하다. 단절된 계절 속에서도 감정은 서로를 향해 자라나고 있고, 그 감정은 눈처럼 조용히 쌓여간다. 방 안에 둘만 있을 때는 대사가 적고,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음악이 천천히 배경에 깔린다. 음악이 없는 장면도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삽입되는 음악 한 곡이 더 크게 다가온다. 또한 이 공간은 감정이 ‘흘러나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음악 작업을 할 때마다 감정은 마이크를 타고 녹음기로 옮겨지고, 사진은 감정의 순간을 프레임에 가둔다. 이런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마치 두 사람의 감정을 하나씩 정리해주는 감정의 작업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순한 하숙집이 아니라,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감정이 공존하는 장소. 그 집은 겨울이라는 계절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잠시 머물다 가는 거처가 된다.
감정을 연주하는 음악, 멜로디로 흐르는 고백
이 드라마에서 음악은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다. 극 중 인물들은 실제로 음악을 만들고, 작사하며, 감정을 단어와 멜로디로 바꾸는 과정을 직접 수행한다. 특히 작사가인 은수가 선우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쓰는 장면들은, 음악이 기억과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제곡 ‘사운드트랙 #1 OST’ 시리즈는 시즌 전체에 걸쳐 감정을 촘촘하게 설계하며 등장하고, 그 중에서도 ‘Love beyond words’나 ‘Wanna be your lover’ 같은 곡은 두 사람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음악은 명확한 고백 없이도 고백의 기능을 한다. 직접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 가사와 멜로디가 대신 전달해주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들이 함께 음악을 작업하거나, 이어폰을 나눠 들으며 가사를 곱씹는 장면은 감정이 대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청각으로 전달되는 구조를 만든다. 이처럼 음악은 이 드라마에서 감정을 가장 부드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언어다. 또한 모든 음악은 극 전체의 조용한 톤에 맞춰 어쿠스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신디사이저나 강한 드럼 없이, 피아노와 기타, 스트링 중심의 잔잔한 사운드는 인물들의 내면을 안정적으로 감싸준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감정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다가온다.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그 음악을 다시 들을 때, 마치 겨울의 그 공간과 순간이 다시 재생되는 듯한 잔상이 남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감정을 가두지 않는 거리감, 그리움이 머물던 사이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을 너무 빨리 풀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가 고백과 위기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반면, ‘사운드트랙 #1’은 감정이 어떻게 쌓이는지를 오래 바라보는 시선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공간은 감정을 붙잡고, 음악은 그것을 흘려보낸다. 하숙집 안에서의 감정은 밀도 높게 응축되지만, 마치 일부러 거리를 유지하듯 서로의 방 사이 문은 자주 닫혀 있고, 벽 너머의 소리로 서로를 느낀다. 그 거리감은 어쩌면 사랑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예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음악을 만드는 작업, 함께 밥을 먹는 일상, 서로를 찍는 사진, 그런 작은 순간들이 사랑을 말하기 전의 감정을 포장한다. 직접적인 고백보다 더 감정적인 건, 아무 말 없이도 함께 있는 그 시간들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악과 함께 정리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삽입되는 테마곡이 흐를 때, 시청자는 비로소 그 사랑이 도달한 지점을 느낀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감정을 끝까지 붙잡지 않는다. 대신 어느 순간엔가 천천히 떠나보낸다. 그리움이 머물던 거리, 조용한 음악이 흐르던 겨울, 그리고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오래 침묵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 ‘사운드트랙 #1’은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라, 사랑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보여주는 정서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