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공간의 낯선 그림자
2023년 Genie TV에서 방영된 <마당이 있는 집>은 우리가 늘 꿈꿔왔던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넓은 거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 계절마다 다른 빛을 품는 마당 — 이 집은 ‘성공한 삶’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완벽한 집에서 주인공은 점점 낯선 기운을 느끼고, 그 낯섦은 곧 불안이 되고, 폭력이 되고, 의심이 된다.
왜 마당 있는 집이어야 했을까?
<마당이 있는 집>은 제목부터 그 공간을 말하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집’이 아니라 집 안에 스며든 감정의 균열이다. 그리고 그 균열은 마당이라는 이상적인 공간에 투사된 시대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마당은 자유로운가, 통제받는가
마당은 원래 자연과 가장 가깝게 닿는 공간이다. 도시 아파트의 베란다나, 빌라의 공용 마당과는 다른, 전유(專有)의 공간.
그곳에 나만의 화분을 놓고 의자를 두고 고양이를 풀어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진짜 집’이라 부른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에서 마당은 정서적으로 통제된 공간이다. 마당이 보이는 위치에 주방과 거실이 있고 모든 방의 창은 마당을 향해 열려 있으며 실제로 가족 구성원들은 늘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당하는 듯한 동선에 갇혀 있다.
마당은 열려 있지만, 그 안의 공기는 답답하다. 자연을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투명한 감옥이 된다.
주방과 마당 사이, 아내의 위치는 어디인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바로 주방이다. 주방은 마당과 연결돼 있고 아이와 남편, 손님까지 모두 이곳을 통과하며 아내이자 주인공인 ‘주란’의 감정은 이 복잡한 경로 안에서 점점 얇아진다. <마당이 있는 집>은 주방을 가정의 중심이 아니라 감정의 무덤처럼 연출한다. 밝고 깔끔한 싱크대, 절제된 인테리어, 높은 수납장 — 하지만 그 구조는 감정의 흐름을 막는다. 말은 오가지 않고 식사는 조용하며, 표면만 정리된 관계들이 이 주방에 쌓인다. 그 모든 시선은 마당을 향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감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상적으로 보이는 집’이라는 연극 무대의 배경을 확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완벽한 집은 왜 불안을 숨기기 딱 좋을까
드라마 속 범죄는 느닷없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이 감정을 오래도록 숨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당이 있는 집>은 말한다. 모든 게 잘 정돈된 구조 안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아무도 모른다. 이 집의 공간은 너무 넓고, 너무 단정하다. 이러한 모습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감정이 머무를 구석이 없고 무언가를 억지로 포장해두기에 딱 알맞은 곳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일수록 이 집에서는 오래도록 의심받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은 작게 시작한다. 마당의 냄새, 낯선 흔적, 의미 없는 반복들 — 그리고 그것은 이 집을 이상적으로 만든 구조 안에서만 더 조용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우리가 꿈꿔온 집은 정말 안전한가
<마당이 있는 집>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직설적이다. “좋은 집”이라고 불리는 조건들을 하나씩 나열한 뒤, 그 조건 속에 무엇이 배제됐는지를 묻는다.
감정의 흐름은 설계되지 않았는가?
의심의 통로는 막아두었는가?
안전은 보장되었는가?
우리는 마당 있는 집을 ‘성공’이나 ‘가족의 완성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은 집이라도 그 안에서 숨죽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미완의 함정이다. 완벽한 집일수록 그 안에 결핍이 더 오랫동안 숨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설계해야 할 건 공간보다 감정의 흐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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