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나의 아저씨’ 속 을지로 인쇄골목, 조용한 서울의 진심을 따라(서울을 걷는 드라마 1)

view0920-1 2025. 6. 29. 10:03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을지로라는 공간의 만남 

2018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 손에 꼽히는 감정의 밀도를 가진 작품이었다.
이선균과 아이유(이지은)가 각각 '박동훈'과 '이지안'을 연기하며, 상처 입은 두 인물이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드라마는 폭발적인 화제성보다 조용한 파장을 남겼다.

이 드라마의 힘은 이야기와 연기, 대사뿐만 아니라 ‘장소의 공기’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장소가 바로 서울 을지로다.

을지로는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늘 중심은 아니었다.
고층 건물과 번화한 상권 사이로 낡은 간판, 인쇄소, 배달 오토바이, 철제 셔터들이 가득한 이 거리에서, ‘나의 아저씨’는 서울의 진짜 얼굴을 포착했다.
드라마에서 이지안이 묵묵히 걸었던 골목, 동훈이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골목 식당, 낮은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던 회색빛 도시.
이 풍경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당시 많은 시청자 느꼈다. “저 골목, 그냥 지나쳤던 곳인데 드라마를 보니 걷고 싶다.”
그것이 바로 을지로의 매력이다.
겉으로는 낡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 감정, 사람의 온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는 그 온기를 가장 섬세하게 보여준 드라마였다.

 

'나의 아저씨' 속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골목길

드라마 속 을지로 골목들, 지금 걸어보면 이렇게 다르다 

‘나의 아저씨’ 방영 이후, 을지로는 감성 여행지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인쇄소 골목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가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을 직접 걷고 싶다”며 을지로를 찾았다.
하지만 을지로는 드라마 촬영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매력이다.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좁은 골목 사이로
오래된 활자 인쇄소, 금속 간판, 손때 묻은 공장 창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작업 중인 곳도 있고, 문을 닫은 인쇄소도 있다.
바닥에는 기름때가 그대로 묻어 있고, 낮에도 어둡다.
그 골목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드라마 장면이 떠오른다.
이지안이 이어폰을 꽂고 묵묵히 걸었던 그 길,
박동훈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허름한 계단.

지금은 일부 골목에 소형 감성 카페, 사진관, LP 바, 창작 공방이 생겨
조금은 젊어진 느낌도 있지만, 여전히 을지로는 ‘그 시절’의 공기를 품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조용히 감정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풍경, 말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어느 골목에서든 ‘내가 주인공이 되는 장면’이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던 철문 간판과 공장 옥상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을지로 4가 골목에 위치한 어느 오래된 철문은,
실제로 드라마 팬들이 인증샷을 남기고 가는 명소가 되었으며,
근처 분식집이나 호프집은 ‘드라마 속 느낌 그대로’ 메뉴판조차 변하지 않았다.
이는 을지로가 관광지로 소비되지 않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는 증거다.

 

 

을지로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 감정의 속도를 낮추는 일 

을지로는 ‘볼거리 많은 관광지’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도시 속의 틈’이다.
우리는 종종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더 바빠지고, 더 피곤해진다.
그러나 을지로를 걷는 여행은 정반대다.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평일 오전.
사람이 적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라디오만 들리는 시간대다.
그 시간에 을지로3가역~4가역 사이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드라마에서 느꼈던 정적과 울림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감성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창밖을 보며 노트북이 아닌 ‘생각’을 정리해본다.
근처에는 인쇄소 견학이 가능한 스튜디오도 있고,
작업장이 전시 공간으로 바뀐 곳도 있다.
그 골목에서 전시를 보고, 종이 냄새를 맡고,
금속 활자 하나를 손에 쥐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을지로에는 자기 속도로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온 이들, 연인보다는 친구끼리, 또는 조용히 카메라만 든 채 걷는 사람들.
이 드라마가 남긴 영향력은 바로 그것이다.
‘조용한 서울도 아름답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사람들은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미하는 여행자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낡은 철문과 음습한 골목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이 골목이 감정을 정리하고, 위로를 받는 장소가 된다.
그게 바로 ‘나의 아저씨’가 을지로에 남긴 정서적 풍경의 가치다.

 

 

‘나의 아저씨’가 남긴 감정, 골목 끝에서 다시 만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외롭고,
또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을지로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줬다.
그 이야기와 감정은 종영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남아,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는 드라마를 떠올리며 일부러 이 거리를 찾고,
누군가는 우연히 걷다가 그 정서를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 감정은 대단한 장면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마주보던 순간,
잠깐의 침묵,
희미한 미소에서 비롯된다.

을지로는 그런 순간들을 품고 있는 동네다.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는 곳,
사진을 찍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곳,
그리고 드라마처럼 조용히 스쳐가도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곳.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이지안 같고, 박동훈 같구나’ 하고 문득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골목은 지금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겐 잊고 있던 감정을 꺼내주는 도시 속의 쉼표가 된다.
‘나의 아저씨’는 끝났지만,
그 장면들이 담겼던 이 거리, 이 감정은 지금도 살아 있다.
언젠가 마음이 조용해지고 싶을 때,
그저 걷고 싶을 때,
을지로로 향해보자.
그곳에서, 드라마보다 더 진짜 같은 나의 이야기가 시작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