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람 사이, 질문이 자라는 드라마
'로스쿨'은 2021년 JT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기존의 법정 드라마가 익숙하게 그려온 ‘정의 구현’의 판타지 대신,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고뇌와 사유의 과정에 집중했다.
정답보다 질문을, 정리보다 혼란을 택한 이 드라마는
정의란 무엇이고,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매회 시청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흘러간 공간은
가상의 ‘한국대학교 로스쿨’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캠퍼스다.
강의가 시작되고, 사건이 벌어지고, 인물이 흔들리고,
다시 자리를 잡는 거의 모든 감정의 축이 이 교정 안에서 형성됐다.
'로스쿨'은 학교를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았다.
교정은 인물들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타인을 이해해가는
감정의 무대이자, 정신의 밀실로 기능한다.
서울 한복판,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고려대는
그 역할을 고스란히 감당해낸다.
붉은 벽돌 건물, 낮은 담장, 석조 계단, 낙엽 깔린 길.
이 풍경은 누군가에겐 학문의 상징일 수 있지만
'로스쿨'을 본 이들에게는
불안한 성장과 조용한 성찰의 배경으로 남는다.
드라마에서 현실로 ― 고려대 교정을 걷는 시간
드라마 속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등장한 공간은
실제로는 고려대학교의 우당교양관이다.
회색 석조 건물과 그 앞에 드리워진 단풍나무는
한준휘와 강솔A, 서지호가 마주 보고 섰던 장면들에 자주 등장했다.
그 길을 실제로 걷다 보면,
단단한 건물 외벽보다 그 앞을 조심스레 걷는 인물들의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드라마 중후반 갈등이 집중되는 장면은
중앙도서관 뒤편 돌담길, 법대 본관 옆 계단,
그리고 자유로 광장 일대에서 자주 펼쳐진다.
지금 그 자리를 지나면
강의실을 오가며 조용히 걸어가는 학생들 사이로
드라마 속 대사와 표정이 겹쳐지며
한순간 공간이 기억의 프레임처럼 정지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모든 것이 조용히 작동하면서도
그 속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공부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누군가는 그저 계단에 앉아 하늘을 본다.
그러나 그 모두의 머릿속에는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로스쿨'은 그 고민을 들춰낸 드라마였고,
고려대 교정은 그 고민이 현실로 흘러나오는 무대가 되어준다.
안암의 골목, 지적 긴장감이 머무는 뒷면
고려대학교 정문을 벗어나
안암로9길, 고려대로24길 일대를 따라 걸으면
고요했던 교정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흐른다.
작은 하숙집, 고시원, 낡은 분식집, 헌책방,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노란 자판기.
이 거리는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로스쿨'의 인물들이
수업이 끝난 뒤 카메라 밖에서 걸었을 법한 현실의 공간이다.
지금도 이 골목엔
법학개론 책과 판례집을 쌓아둔 작은 서점이 있고,
시험 기간만 되면 붐비는 국밥집과
수험생이 오랜만에 웃으며 앉는 삼각김밥 가게도 있다.
모든 것이 조금은 낡고, 약간은 지쳤고,
화려하진 않지만 그 안에선 실제로 미래를 향한 걷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 거리는 드라마의 연출보다 더 정직하고,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로스쿨'의 캐릭터들이
차갑고 완벽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흔들렸던 이유,
그 감정은 이 거리의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법은 책 안에만 있지 않다.
그 법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골목 안에도 숨 쉬고 있다.
붉은 단풍이 내려앉은 계단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고려대학교를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드라마 '로스쿨' 속 무거운 대사와 침묵의 장면들이
이상하리만치 가을의 담담한 공기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준휘와 강솔A가 함께 서 있던 우당교양관 앞 돌계단,
중앙도서관을 지나 자유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붉은 단풍길,
법대 본관 옆 회색 석축 계단.
이 모두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흔적이 남은,
지금도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장소다.
가을 오후,
햇살이 오래 머무는 시각에 이 길을 걷다 보면
공기가 멈춘 듯 조용해지고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또렷이 떠오른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로스쿨'이 보여준 정의와 사유는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이런 순간에 더 가까이 있었다.
돌담 위의 나뭇잎.
벤치에 놓인 노트.
서로 말없이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안고 걷는 거리.
그래서 고려대 교정은 단순한 학문의 장소를 넘어
내 안의 질문과 마주하게 만드는 산책로가 된다.
드라마가 끝난 자리에서 누군가의 생각은 아직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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