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공덕의 어느 날, ‘스타트업’이 피워낸 도시의 상상력(서울을 걷는 드라마 4)

view0920-1 2025. 6. 30. 08:14

'스타트업'이 꿈을 그렸던 서울 한복판의 공간

2020년 방영된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청년 창업”이라는 드라마로는 다소 생소한 소재를
설레임과 현실의 경계 위에서 감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특히 배수지, 남주혁, 김선호가 연기한 세 인물이
서로 다른 상처와 욕망을 품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닌, 도전하는 삶의 가치를 되묻는 메시지로 기억됐다.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은 ‘샌드박스’라는 가상의 창업 지원 센터다.
하지만 실제 촬영지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로,
낡은 공공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대표적인 도시 재생 공간이자
실제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는 곳이다.

'스타트업'속 샌드박스는
미래적 감각의 유리 벽과 열린 사무 공간, 옥상 테라스, 커피와 아이디어가 흐르는 휴게 공간 등
이상적인 창업 생태계로 묘사됐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서울창업허브 공덕캠퍼스에서 실제로 촬영되었고,
현재도 누구나 방문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려 있다.

드라마는 이 건물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과 가능성이 충돌하는 무대로 사용했다.
성장, 실패, 경쟁, 사랑까지.
그 모든 감정이 도시 속 회색 건물 안에서 어떻게 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드라마'스타트업'의 주 무대인 공유오피스

공덕동 골목에서 시작된 도전, 그 공간을 걷는 감정

서울창업허브는 공덕역 2번 출구에서 도보 7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한때는 교통회관이었던 낡은 건물 외벽에
지금은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밝은 파란색 로고가 걸려 있고,
그 아래로는 패스트푸드점, 청년 커뮤니티 카페, 작은 전시장까지
다양한 문화 요소가 접목되어 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이들은
겉보기엔 다소 투박한 건물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이 공간의 매력이다.
무언가 번듯하게 지어올린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감각을 입힌 도시재생의 정직함.
그리고 그 정직함이
'스타트업' 속 청춘들의 꿈과 유난히 잘 어울렸다.

드라마 속 한지평(김선호 분)이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장면,
달미(배수지 분)가 옥상 테라스에 앉아
자신의 선택을 되뇌던 순간,
도산(남주혁 분)이 팀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내일을 계획하던 그 로비.
지금 그 자리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자세로 앉아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

서울창업허브는 단지 사무공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공용 라운지, 입주자용 서재, 지하 강의실,
그리고 외부 방문객도 이용 가능한 북카페와 테라스 공간이 있다.
마포구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열린 에너지와
이 건물의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이질감은
도시를 걷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선물한다.

 

 

상상력이 도시를 바꿀 때, 여행도 달라진다

우리가 알고있던 공덕은 서울에서 ‘지나는 동네’였다.
지하철 5호선과 6호선, 공항철도까지 만나는 교통 중심지였지만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창업허브가 들어선 이후,
주변에는 하나둘씩 감각적인 변화가 생겼다.

창업허브 인근에는 ‘마포중앙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 속 열린 공간을 표방한 이 도서관은
넓은 야외 테라스와 대형 유리창, 자유로운 열람실 분위기로
청년 창업가와 시민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또한 창업허브 건너편 골목에는
지하 갤러리를 개조한 복합 문화공간,
1인 출판물을 판매하는 독립서점,
스타트업 팀원들이 퇴근 후 모이는 작은 크래프트 비어 펍까지
드라마 속 ‘샌드박스’의 분위기와 닮은 공간이 하나씩 생겨났다.

여기에 인근에는 마포 음식문화 거리도 이어져 있다.
브런치 카페, 샌드위치 바, 서울식 고깃집, 24시간 국밥집 등
다양한 선택지 사이에서
도시를 사는 사람들과 걷는 사람 모두가 함께 어울린다.

이 공간을 여행하는 건
단지 ‘스타트업’ 촬영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변화된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일이다.
그 변화는,
단순한 재건축이 아닌 사람들의 상상력이 도시를 덧칠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 감동적이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이, 언젠가 누군가의 시작이 된다면

지금도 서울창업허브의 어느 회의실에서는 “해볼 만한가?”라는 질문이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반복되고 있다.
드라마 '스타트업' 속 인물들이 그랬듯,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확신’보다 ‘가능성’을 품고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열정이 아니라,
커피 한 잔, 작은 질문, 오래된 책상 위 낙서 같은 아주 사소한 흔들림에서 비롯된다.

공덕이라는 이 도시는 바쁘게 지나치는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정지된 시간 속에서 방향을 찾는 장소다.
단순히 창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 한 번쯤 멈춰 앉아 숨 고르기 좋은 장소.
'스타트업'은 그 여백을 비춰줬고,
창업허브는 지금도 그 여백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나요?”라는
표현되지 않은 질문을 안고 살아간다.
그 질문은 꼭 창업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쉬고 있는 사람도,
단지 걷고 있는 사람도
그 질문에 마음 한구석이 반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거리는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가득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현재가 녹아든 풍경이다.
당장 도전하지 않아도 이 공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공덕을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