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공간

‘풀하우스’ 바닷가 주택은 왜 사라졌을까? 드라마 명소의 흥망성쇠(2000년대 드라마 속 풍경 변화 시리즈 2)

view0920-1 2025. 6. 26. 16:39

바다 위 낭만, ‘풀하우스’가 그려낸 이상적인 삶의 공간

2004년, KBS 드라마 ‘풀하우스’는 아시아 전역을 뒤흔든 한류 콘텐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비’와 ‘송혜교’라는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을 끌 수 있었지만, 이 드라마가 유난히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는 단연코 ‘그 집’에 있었다. 바다를 마주한 흰색 2층 목조건물, 세련된 곡선과 넓은 유리창, 푸른 지붕과 푸른 바다의 조화는 당시 시청자들에게 ‘이상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드라마 속 설정처럼, 혼자 살던 집에서 두 남녀가 ‘계약 결혼’을 하며 함께 지내게 되는 구조는 비현실적이지만 강한 판타지를 자극했다.

이 주택은 단순한 세트 이상의 존재였다. 극 중 배경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정이 가장 자주 부딪히고 화해하고 변화하는 서사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했다. 실내 장면부터 외부 테라스,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하나까지 스토리와 밀접하게 엮이며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풀하우스’라는 드라마 제목 자체가 이 공간을 가리킬 정도로, 이 집은 곧 드라마의 정체성이었다.

드라마가 방송된 이후, 그 촬영지는 급격하게 유명세를 탔다. 인터넷에는 “풀하우스 촬영지 가는 방법”, “풀하우스 집 인증샷” 등이 빠르게 확산됐고,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팬들과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그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갑자기 유명해진 그 공간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해안이었던 강화도 한 켠을 하루아침에 ‘명소’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환상과 낭만 뒤에는 몇 가지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풀하우스'의 바닷가 주택 배경이였던 강화도

강화도 풀하우스 세트장의 실제 위치와 구조

‘풀하우스’의 촬영지로 사용된 그 집은 서울이 아니라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다. 관광지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지역 주민조차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조용한 해변이었다. 실제 드라마 제작진은 이 해안가 부지에 드라마 전용 세트를 급히 제작했고, 이후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 구조물을 철거하지 않고 일정 기간 유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드라마의 인기가 워낙 높았고, 팬들의 발길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건물은 정식 건축 허가 없이 제작된 임시 세트장이었다. 해안 절벽 위에 목조 자재로 빠르게 지어진 구조물은 드라마 촬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만 설계된 것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건물처럼 안전 기준을 충족하거나 내구성을 고려한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촬영 당시에는 외관의 시각적 효과만 중시되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유지보수 계획도 없었고, 주변 기반시설 역시 부족했다.

게다가 바닷바람과 해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세트장은 빠르게 부식되기 시작했다. 목재 외벽에는 균열이 생기고, 지붕 일부는 비바람에 휘어졌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도 방문객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사진 촬영을 위해 무단으로 들어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연히 안전사고 위험도 커졌고,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도 생겼다.

결국 2013년경, 인천시와 군청 측은 해당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지역 보존 문제, 안전 문제, 관리 주체 부재 등 복합적인 이유가 겹쳤다. 그렇게 풀하우스의 세트장은 한순간의 명성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그 자리는 허허벌판처럼 남아 있으며, 바닷가 산책길 일부로만 조용히 존재할 뿐이다.

 

 

왜 드라마 명소는 지속되지 못할까? 콘텐츠 관광의 구조적 한계 

풀하우스 세트장이 보여준 사례는 한국의 많은 ‘드라마 명소’가 직면하는 공통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관광 수요의 일시성이 큰 문제다. 드라마가 방영되고 인기가 있을 때는 해당 장소에 엄청난 방문이 집중되지만, 콘텐츠 소비가 끝나면 사람들의 관심도 빠르게 식는다. 드라마 하나로 지역이 유명해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명소가 지속적인 관광 자원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두 번째는 인프라 부족이다. 대부분의 드라마 촬영지는 제작 환경과 예산을 고려해 외진 곳이나 개발되지 않은 장소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장소는 관광지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시설(화장실, 안내소, 주차장, 안내 표지 등)이 부족하며, 사유지일 경우 관리권한 문제도 발생한다. 결국 방문객은 불편함을 느끼고, 지역 주민은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는 구조가 반복된다.

세 번째는 지속 가능한 콘텐츠 연계의 부재다. 관광객이 단순히 “여기서 드라마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실제 경험이나 이야기, 또는 지역 자원과의 연결이 필요하다. 풀하우스의 경우, 해당 세트장이 지역 역사나 문화와는 무관한 독립적 공간이었기 때문에 지역과의 연계가 불가능했다. 단기적인 팬심은 유도할 수 있어도, 장기적인 감성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네 번째는 콘텐츠 유통 방식의 변화다. 과거에는 TV 드라마가 방영되면 그 여운이 오랫동안 유지됐지만, 현재는 OTT 중심의 소비 구조 속에서 드라마 하나의 수명이 매우 짧아졌다. 풀하우스 같은 작품은 예외적으로 오래 사랑받았지만, 대부분의 드라마 명소는 관심의 수명이 1~2년을 넘기지 못한다. 결국 문화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명소는 그만큼 빠르게 생성되고, 또 빠르게 소멸된다.

 

 

사라진 풀하우스, 그 이후… 감성을 따라 걷는 여행의 가능성 

세트장은 사라졌지만, 그 장소가 남긴 감정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아 있다. 강화도의 그 해안은 여전히 바람이 세차고, 하늘은 넓으며, 해가 질 무렵이면 바다가 붉게 물든다. 비록 흰색 집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드라마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새로운 여행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바로 감성 기반 스토리 여행 콘텐츠다.

지금 강화도 신흥리 일대를 걷는다면, 단순히 ‘풀하우스 집이 있던 곳’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그 장소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라진 명소를 찾아 걷는 길’, ‘추억의 드라마 장면 따라 걷기’, ‘기억 속 배경지에서 마주하는 오늘의 풍경’ 같은 테마 산책로로 재기획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사라진 드라마 세트장 주변을 감성 걷기 코스로 만든 사례가 있다.

또한 풀하우스처럼 상징적인 드라마일수록, 장소보다는 감정의 서사가 남는다. 누군가는 이 집에서 사랑의 시작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혼자 걷던 주인공을 떠올린다. 그러한 감정을 현대적인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다면, 비록 세트장은 사라졌어도 새로운 방식의 ‘풀하우스 여행’은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기억을 새롭게 소비하는 여행 방식이다.

결국 드라마 명소는 공간이 사라져도, 감정이 살아있다면 여전히 유효하다. 풀하우스의 바닷가 집은 없지만, 그곳을 걷는 우리의 기억과 감성은 오늘도 그 집을 다시 짓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속 가능한 콘텐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