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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러브스토리> – 시부야의 공간성과 90년대 발라드의 감성

청춘의 시작, 90년대를 수놓은 드라마 ‘도쿄 러브스토리’1991년에 방영된 일본 드라마 ‘도쿄 러브스토리’는 방영된지 한참 지난 고교시절 일본의 감성에 푹빠져 보았고, 만약 연애를 막 시작한 세대라면 누구나 이 드라마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할 수 있었다. 특히 ‘칸지’와 ‘리카’, 두 주인공의 감정 변화는 단순한 서사로 그쳐지지 않았고, 일본 사회가 막 현대화되던 시기의 청춘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담아냈다. 이 드라마가 시대를 대표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멜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이 되는 도쿄 시부야라는 공간이 청춘의 중심 무대로 작용하며, 세련되지만 낯설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도시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시부야의 번화한 거리와 고층빌딩, 그리고 번쩍이는 간판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주인..

드라마 × 공간 2025.07.19

<고독한 미식가> - 정적의 공간과 재즈의 향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왜 유독 조용한가?최근 영화로도 개봉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고독한 미식가’는 일본 드라마 특유의 담백함과 정적의 미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그저 바쁜 하루 중 허기를 느끼면 음식점에 들어가 조용히 음식을 먹는 중년의 회사원이다. 이 드라마에는 자극적인 서사도, 복잡한 인간관계도 없다. 그저 고로가 혼자서 밥을 먹는 풍경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은 그 ‘단순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 이유는 단지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무언의 정서, 그리고 그 정서를 받쳐주는 공간과 음악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체험 때문이다. 실제로 ‘고독한 미식가’의 회차를 따라가다 보면, 고로..

드라마 × 공간 2025.07.18

〈더 에이트 쇼〉 – 계급사회는 공간으로 태어난다

계급은 말보다 먼저 건축된다는 시작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동등한 경쟁의 장에 입장한 듯 보이지만, 공간의 구조는 일찍부터 그들 사이에 위계와 격차를 예고한다. 출입문은 단 하나이며, 그 문을 통과한 후 인물들이 도달하는 ‘쇼룸’은 폐쇄형 계단과 상승 구조를 갖는다. 참가자들은 위로 오르며 쇼에 접근하고, 쇼룸 내부는 객관적 감시와 자기연출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수직적 동선 구조는 초기에는 단순한 방송 공간처럼 보이지만,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계급 분화의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상위 참가자는 무대 중심부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하위 참가자는 모서리 또는 사각지대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위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발언권과 노출 권력을 의미한다. 드라마는 이 구조 속에서 ..

드라마 × 공간 2025.07.17

〈마에스트라〉 – 무대 위의 긴장, 음악과 공간이 권력을 말할 때

공연장은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설계도였다에 등장하는 공연장은 음향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누가 통제하고 누가 반응하는지를 명확하게 가시화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지휘자의 자리는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위에 놓인 경계에 가까우며, 포디엄이라는 단차는 물리적인 높이보다 더 큰 상징을 품고 있다. 한 사람이 팔을 들면 수십 명이 반응하고, 관객은 그 움직임 하나에 긴장을 조율한다. 여기서 음악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통제의 언어다. 무대 위에 설치된 반사판은 소리를 퍼뜨리기 위한 장치이면서도, 지휘자의 해석이 어디까지 닿는지를 눈으로 보여주는 권력의 확성기 역할을 한다. 작품 속 차세음은 바로 이 공간의 질서를 가장 정밀하게 해석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그녀의 한 걸..

드라마 × 공간 2025.07.16

〈세작, 매혹된 자들〉 – 감시와 은폐의 건축, 조선 궁중은 어떻게 목소리를 삼켰는가

조선 궁중 공간, 권력이 말을 감추는 방식tvN 드라마 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궁중 스파이 서사로, 정치적 음모와 개인의 감정, 여성의 저항이 교차하는 서사를 공간으로 섬세하게 설계한 작품이다. 극 중 인물들이 오가는 궁의 건축적 배치는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라, 권력 구조와 감정 통제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반영한 구조이자, 당시 사회가 정보를 어떻게 다루고 은폐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체계다. 조선의 궁은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이중 구조를 띤다. 천정이 낮고 복도가 길며, 벽이 얇고 문이 많다. 이는 한편으로는 감시를 용이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은밀한 접근과 속삭임을 허용하는 설계이기도 하다. 에서 주요 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인 내명부, 대비전, 후원 등의 장소는 단순한 생활공간이 ..

드라마 × 공간 2025.07.15

〈굿파트너〉 – 가정법률사무소, 이혼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변화된 풍경

드라마 ‘굿파트너’의 핵심 공간: 가정법률사무소의 구조적 기능24년도 인기드라마 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일하는 로펌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 사무실은 단순한 직장이 아닌 한국 사회의 이혼 현실과 시선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드라마 속 법률사무소는 감정을 쏟는 곳이 아니라 전략과 결정을 다루는 중립적 장소로 기능하며, 특히 상담실과 회의실은 단정한 가구 배치와 최소한의 장식으로 감정적 개입을 차단하고 실무 중심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적 구성은 실제 이혼상담 환경의 구조와 유사하며, 현대 사회에서 이혼은 더 이상 극적인 파탄의 상징이 아닌 삶의 조정과 재구성이라는 관점으로 접근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사적 감정이 아닌 공적 판단이 ..

드라마 × 공간 2025.07.14

〈오늘도 사랑스럽개〉 – 교실,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곳

‘학교’는 끝났는데 ‘감정’은 아직 졸업하지 못했다MBC 는 말랑한 제목과는 달리 꽤 묵직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해나는 키스하면 개로 변한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저주에 걸려 있는데, 주인공 해나는 이러한 저주로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를 숨기게 되고 진짜 감정을 말하기보다 ‘그냥 웃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상징한다.그 시작은 교실이다.누군가에게 무심한 말 한 마디, 이유 없이 당한 소외 혹은 감정을 고백하고 돌아온 침묵의 순간들이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 아직도 남아 있다. 20대가 된 지금, 학교는 물리적으로는 멀어졌지만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졸업하지 못한 공간이다. 누군가 다가오면 한 발 물러서게 되고 사소한 친절에도 조심스러워지는 건 과거에 겪은 작은 상처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기 때..

드라마 × 공간 2025.07.13

〈스물다섯 스물하나〉 – 체육관과 옥탑방, 우리도 그 어딘가에 살았었다

체육관, ‘나는 여기 있다’고 외치던 그 시절드라마 는 1998년 슬품과 좌절이 가득하던 시대에 빛이나는 청춘들의 평범한 이야기고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더 아픈 이야기다. 체육관 바닥의 먼지, 휘어진 철봉, 무채색 옥탑방의 벽지처럼 이 드라마는 삶의 일부였던 공간들을 너무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 시절, 우리 역시 매일을 살아냈다. 무언가 되겠다는 생각은 막연했고,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땀은 흘렸고, 가슴은 떨렸고, 세상은 확실히 낯설었다.체육관은 나희도가 모든 걸 던지던 공간이다. 말 그대로 몸을 던져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곳. 지금 40대에게도 그런 체육관이 있었다. 누군가는 회사였고, 누군가는 강의실이었고, 누군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취방 안의 책상이었다. 어쨌든 그곳에서 우리는..

드라마 × 공간 2025.07.12

〈닥터 차정숙〉 – 병원은 일터였을까, 인생의 갱도였을까

병원 복도는 늘 걸어만 다녔지, 멈춰서 본 적 없었다드라마 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이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병원을 늘 아플 때만 찾는데 그곳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진료받고, 치료받고, 가급적이면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병원을 ‘일터’로 그린다.더 정확히 말하면, 한 중년 여성이 다시 살아나는 무대로 보여준다. 주인공 차정숙은 20년 동안 내조와 육아에 인생을 바쳤지만, 남편의 외도와 건강의 위기를 맞으면서 결국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선택한 건, 의과대학 졸업 후 포기했던 ‘레지던트의 길’.이제 병원은 그녀에게 인생 2막의 시작점이자 감정의 재건축 현장이다. 우리가 그동안 스쳐 지나간 병원 복도의 불빛 아래서, 이 드라마는 아주 천천히, 차정숙의 감정과 ..

드라마 × 공간 2025.07.11

〈마당이 있는 집〉 – 그 마당은 왜 자꾸 불안을 심었을까

이상적인 공간의 낯선 그림자2023년 Genie TV에서 방영된 은 우리가 늘 꿈꿔왔던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넓은 거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 계절마다 다른 빛을 품는 마당 — 이 집은 ‘성공한 삶’의 완성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완벽한 집에서 주인공은 점점 낯선 기운을 느끼고, 그 낯섦은 곧 불안이 되고, 폭력이 되고, 의심이 된다.왜 마당 있는 집이어야 했을까?은 제목부터 그 공간을 말하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집’이 아니라 집 안에 스며든 감정의 균열이다. 그리고 그 균열은 마당이라는 이상적인 공간에 투사된 시대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마당은 자유로운가, 통제받는가마당은 원래 자연과 가장 가깝게 닿는 공간이다. 도시 아파트의 베란다나, 빌라의 공용 마당과는 다른, 전유..

드라마 × 공간 2025.07.10